BOOK

20240711 눈물꽃소년 / 박노해작가님

복숭아넥타365 2024. 7. 17. 14:17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수필.
본명 박기평, '평이'라 불리던 1960년대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33편을  담고 있다.
남도 끝자락 동강에서 자랄 때의 사투리를 그대로 담은 대화가 실려 있어,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느낌도 덤으로 받을 수 있다 .(사투리가 익숙지 않아 같은 줄을 몇 번 반복하여 읽기도 ^^)
 
따뜻함, 정, 인간미,  느림, 그리움, 가치 ,,, 아날로그적 감성을 건드리는 책이라, 장마철과 잘 어울린다고 막 생각하던 참이다.
디지털 디톡스 중인 사람들에게 충만감을 주는 책이다.




장마철에 힘들었던 경험이 많아서인지
이 시기가 되면 습관적으로 기분이며 몸이며
나도 모르게 과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시기적절하게 눈물꽃 소년을 만나,
매년 반복하는 장마철 마음습관을 바꾸려한다.
탈피의 시간이 보이는 건 우연인가? 필연인가ㅋ


힘든 거 알아.
나도 많이 울었어.
하지만 나에겐 누구도 갖지 못한
미지의 날들이 있고
여정의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어.
그 눈물이 꽃이 되고
그 눈빛이 길이 될거야.



어릴 적에는 최씨네 울보라 불릴 정도로
난 잘 울었다.
아버지 중심의 딱딱한 가정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부지런히 감정표현을 했던 것 같다.
무서워서 숨어 꾹꾹 눌러담은 언니와는 달리.
그 덕에 감성이 좋고 교감을 잘하고 잔정이 많은 사람으로 자랐다고 자부, 했었지?

어느 순간,  눈물을 보이면 상처받는 일이 추가로 더 생겼다.
상처받으면 또 울게 되고.
사회생활에서는 약점에 가까운 것이라, 지지 않으려 울기를 멈췄다.

마음이 바스라지고 따라 몸도 푸석해진 나를 알아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20년 휴직을 계기로,
다 뒤로하고 몸과 내면 정화를 가장 우선으로 살면서
삶을 살고 싶게하고 풍성해지게 하는 건
타인도 아니고 타인과의 관계도 아니고
나를 먼저 아는 것, 나와의 관계라고
어렴풋한 깨달음을 얻었다.

 
박노해 작가님이 어린시절 얘기를 꺼냈을 때는
어떤 생각의 시절을 보내는 중일까.

출산육아워킹맘 종합세트로 인해
소모만 하던 삶을 돌아보며,
(물론 아이와 함께 얻은 것도 많다. 다만, 엄마의 삶은 성인과 일체중생의 관계처럼 나를 온전히 내려놓아야 하는 때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 있다.)
경력단절은 막고 나와단절을 얻은 10여년을 벗어나
내 안의 빛을 찾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운 좋게.

나이듦이 곧 전문가였던 시절,
할머니의 지혜가 담긴 대화에서
빼족해진 마음을 말랑하게 해주고
스스로 바르도록 마음먹게 만드는 할머니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런 할머니와의 추억편을  인용해본다.




할무니, 멋이가 머시다요?

그랑께... 멋이란 그 머시기제이. 사람은 말이다. 다 제멋을 타고나는 거여.
눈에는 안 보인는디 맘에는 보이는 그 머시기 말이다.
하늘을 보고 꽃을 보고 별을 보면은 그 머시기가 맘에 안 오냐아.

아까 그 부잣집 양반들 거동 좀 봐라. 화려하게 차려는 입고 겉멋은 부렸는디,
경망스럽고 거만하고 천박하지 않드냐. 긍께 그 머시기가 안 없냐아.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어도 안에서 빛이 없고 얼이 어리지가 않으니 멋이 없지야.


장날, 할무니 말씀 中



평아, 알사탕이 달고 맛나지야? 그란디 말이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도 다 제맛이 있지야.
알사탕이 아무리 달고 맛나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독한 것이제.
유순하고 담박하고 부드러운 맛을 무감하게 가려버리제.
다른 맛들과 나름의 단맛을 가리고 밀어내 부는 건 좋은 것이 아니제.
알사탕 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

야아, 할무니 알겠어라.

우리 평이는 겨울이면 동백꽃을 쪼옥 빰시롱 '달고 향나고 시원하게 맛나다' 했는디,
올해 동백꽃 맛은  어쩌드냐아. 나는 말이다, 아가. 
네 입에 넣어줄 벼꽃도 깨꽃도 감자꽃도 아욱꽃도 녹두꽃도 오이꽃도 가지꽃도
다 이쁘고 장하고 고맙기만 하니라.
아가, 최고로 단 것에 홀리고 눈멀고 그 하나에만 쏠려가지 말그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 품에 꼬옥 안겼다.

빨간 알사탕 하나 中